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이너를 위한 안내서

4.3.1 정책과정에서 디자인은 언제 개입되어야 할까?

SERVICE DESIGN 2023. 4. 2. 22:58

4.3. 공공서비스디자인,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4.3.1 정책과정에서 디자인은 언제 개입되어야 할까?

'디자인은 문제의 실제 원인을 파악하고 사용자 중심의 솔루션에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므로 정책 프로세스 초기 단계부터 디자인이 포함되어야 한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 기법을 활용하면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전반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서비스디자인을 정책에 도입하는 것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민간 부문의 선행 디자인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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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이미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스스로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혀 있지 않은 일들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전 애플 CEO)

정책과정에서 디자인은 언제 개입되어야 할까? 다음의 사례는 정책과정의 초반부에 수요자 중심으로 문제 정의를 해야 할 필요를 설명하고 있다.

"1950년대 덴마크의 한 작은 지자체에서 예기치 못하게 공공 수영장 이용객의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공무원들이 수영장 시설을 방문했다. 수영장을 둘러본 후 공무원들은 건물 시설이 낙후된 것을 보고는 이를 사람들이 이곳을 더 이상 찾지 않는 이유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건축가를 고용해 이 건물을 고쳐 쓸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 할지를 판단과 함께 새 건물의 디자인을 주문했다. 두어 달 뒤 새 건축물의 조감도를 기다리는 공무원들과의 미팅에서 디자이너는 전혀 다른 해답을 제시했다.
"수영장이 낡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버스 시간표입니다. 작년에 30분씩 옮겨진 버스 운행시간으로 인해 출근 시간에 수영장을 이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방문객이 줄어든 것입니다.”
- 핀란드 ‘시트라(Sitra)’ 전략디자인부서장. 마르코 스테인베리 (Marco Steinberg)

이 가상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미 건축물을 새로 짓자는 결론을 내린 공무원들은 이 문제를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못했다. 만약 그 디자이너가 사용자 조사를 통해 문제의 진짜 원인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고 주어진 과제였던 건물 고치기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수영장 재건축에 상당한 재정과 시간이 들겠지만 여전히 수영장 이용자는 늘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 기획 단계에 디자인 방법으로 수요자의 욕구를 고려하여 정책을 구상하는 것은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위한 적절한 방법이고 비용 효율적인 방법이다.

정책 실패의 원인은 수요자의 니즈를 잘못 파악했거나 문제 정의를 잘못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공공정책의 설계자들은 정책실패의 원인을 수요자의 니즈를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닐까, 문제 정의를 잘못한 것이 아닐까(주로 정책과정의 전반부)에 주목하는 대신 홍보 부족(주로 정책과정의 후반부)을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홍보란 공급자가 의도하는 방향을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일방향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는 정책 공급자들은 정책의 문제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도 여전히 공급자 관점으로 본다는 한계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정책과정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결정하는 초반부보다도 일단 확정된 정책을 실행하고 알리는 후반부에 자원을 집중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고착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 기존 정책 과정에서 자원(예산)의 사용 패턴

면적은 사용되는 예산의 총량을 의미함. 실행과 홍보, 환류에 많은 예산이 사용됨

대규모 홍보를 통해 수요자의 인식을 조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제하는 공급자적 관점을 취해 온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일단 수영장을 고친 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안 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영장이 새롭게 개장했다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과 같다.
계획 초반에 사람들의 니즈를 잘 찾고, 행동방식과 사고방식에 유념해 설계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실행된 이후에 사람들에게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됨으로써 정책 집행 단계에서 사용되는 비용과 홍보비용을 큰 폭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체 예산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림 : 정책 과정에서 자원(예산) 운용 변화에 따른 효과(예상)


계획단계에 예산을 더 투입하면 상대적으로 실행 이후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됨(파란색)

그림 : 정책과정에서 기존의 디자인이 개입되는 시점

* 그림 출처 : Steinberg, Marco, the Finnish Innovation Fund Sitra

다음 그림은 디자인이 정책과정의 초반부에서 역할을 할수록 더 큰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을 도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 바람직한 디자인의 개입 시점

* 그림 출처 : Steinberg, Marco, the Finnish Innovation Fund Sitra

최근 나타나고 있는 국민디자인단이나 서울시 공공서비스디자인 워크숍 등의 활동은 정책을 기획하는 단계에 디자인을 활용해서 수요자의 욕구를 반영한 정책개발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민간에서 ‘선행디자인’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선행디자인이란 제품을 개발할 때 먼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해서 사용자의 의도가 반영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회사가 가진 기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일을 돌이킬 수 없이 되었을 때 속칭 껍데기를 씌우는 일을 디자인이 맡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애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세계 선두 기업들이 선행디자인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사용자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개발 과정의 앞부분에서 디자인은 사용자들의 욕구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를 결정하는 일, 즉 문제를 정의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에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도입한다는 말은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개발하는 ‘정책의 선행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 보이지 않는 서비스, 보이는 디자인,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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