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관료제는 행정을 바꿀 수 있을까.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2026에서 본 서비스디자인과 정책디자인

2026. 6. 19. 23:12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창의적 관료제는 행정을 바꿀 수 있을까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2026에서 본 서비스디자인과 정책디자인

 

2026_cbf26_programme-1.pdf
0.39MB

 

“창의적 관료제”라는 말은 처음 들으면 어딘가 모순처럼 느껴진다. 관료제는 규정, 절차, 승인, 문서, 책임의 언어로 움직인다. 창의성은 실험, 상상, 연결, 전환의 언어에 가깝다. 그 어색함 때문에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은 흥미롭다. 이 행사는 행정을 창의성과 대립의 체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행정이 더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2026년 6월 11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9회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의 주제는 “Creative Bureaucracy – Stronger Democracy”였다. 창의적 관료제가 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든다는 뜻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시민은 정부가 교육, 의료, 안전, 기후, 이민, 디지털 전환 같은 문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은 단순히 절차를 지키는 조직으로 머물 수 없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고,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며, 복잡한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는 실행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2026 공식 프로그램의 주제 트랙은 기후·지속가능성, 협업·소통, 재원, 건강·웰빙, 미래상상, 조직문화·거버넌스, 참여, 공공인프라·공간, 기술·데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Design”이라는 단독 트랙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2026년 프로그램 안에 디자인 관련 논의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3월 Digital Kick-Off에서는 “All Voices, New Services: Creating Public Solutions With Service Design”, “Ein Blick in den Werkzeugkasten der modernen Gesetzgebung: Wie wir Service-Design und KI nutzen” 같은 서비스디자인 관련 세션이 운영되었다. 6월 11일 베를린 본행사에서는 EU Policy Lab의 “PolyFutures: Reimagining Policymaking Together”가 디자인, 미래예측, 행동통찰을 정책형성 과정에 결합하는 논의를 다루었다. 2026년 프로그램 중 “policy design”이라는 표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26년 Digital Kick-Off의 UNDP 세션 “Futures Served” 설명에는 “collaborative policy design”이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따라서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2026에서 정책디자인은 독립 트랙이나 전면 키워드로 부각되기보다는, 미래예측·행동통찰·참여형 정책형성·시스템 전환 논의 속에 분산되어 나타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일본인의 행사 참여 후기에서도 이 행사를 “조직 안에서 변화를 어떻게 키우고, 실행하고, 지속시키는가”의 문제로 읽었다는 표현이 발견된다. 그 후기는 하루 동안 남은 키워드를 조건, 관계성, 지속성으로 정리한다. 혁신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자랄 조건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장의 문제의식은 이미 있다. 작은 개선의 씨앗도 있고,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의사결정, 예산, 평가, 조직 간 협업을 통과하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데 있다.

이 관점은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에도 중요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시민참여, 이해관계자 인터뷰, 여정맵, 아이디어 발굴, 프로토타입을 강조해 왔다. 그 자체는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가 실제 행정 안에서 작동하려면 그다음 조건 -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어떤 예산으로 이어지는가. 담당자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가. 부서 간 협업은 누가 조정하는가. 성과평가는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가 -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결국 서비스디자인의 성패는 행정의 운영체계 안에서 결정된다. 

리투아니아의 채무자 사회복귀 사례도 정책디자인 관점에서 흥미롭다. 채무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책임 회피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고, 사회에서 배제되는 구조의 문제로 다시 본다. 해결 방식도 처벌 강화가 아니라, 채무 조정, 심리적 지원, 상담자 동행, 노동시장 복귀 같은 조건을 함께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문제를 사람의 결함으로 보느냐, 시스템의 단절로 보느냐에 따라 정책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이 정책디자인의 핵심이다. 정책은 종이에 쓰인 조항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의 배열이다.

또 다른 후기성 자료에서는 프로젝트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행정혁신은 좋은 의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조직의 변화는 끝없는 조정회의에 빠지기 쉽다. 혁신이 실체가 되려면 목표, 역할, 일정, 책임, 실행 구조가 분명해야 한다. 이는 디자인계에도 익숙한 문제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행은 느리고, 프로토타입은 있는데 제도화는 어렵고, 시범사업은 있는데 확산은 막힌다. 행정혁신에서 프로젝트 관리는 사소한 관리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현실로 붙잡아 두는 구조다.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관계성이다. 제도 변화는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책 근거, 데이터, 예산, 법령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결국 누군가가 말을 들어주고, 다른 부서의 사람을 연결하고, “한번 해보자”고 말해주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공공혁신은 영웅 한 명의 돌파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연결망 속에서 자란다. 그래서 창의적 관료제는 개인의 창의성보다 조직의 관계성을 묻는다.

지속성도 핵심이다. 많은 혁신은 시작할 때 빛난다. 새로운 사업, 새로운 공간, 새로운 제도, 새로운 팀은 발표하기 좋고 사진 찍기 좋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6개월 뒤에도 작동하는가. 1년 뒤에도 담당자가 기억하는가. 3년 뒤에도 예산과 평가 안에 남아 있는가. 아니면 멋진 PDF 파일로 어딘가의 폴더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가. 공공디자인과 서비스디자인에서 가장 약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만드는 디자인은 익숙하지만, 유지하는 디자인은 아직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이 점에서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은 디자인계에도 불편하지만 유익한 질문을 던진다.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 아이디어가 제도 안에서 살아남는 조건까지 다룰 것인가. 시민참여를 열었다는 사실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참여의 결과가 예산, 규정, 조직 운영, 서비스 전달체계 안으로 들어가는지 끝까지 볼 것인가. 정책디자인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시작된다.

행사의 공식 프로그램을 보면 서비스디자인은 공공해법을 함께 만드는 방법으로 다루어지고, 입법 과정에서는 서비스디자인과 AI가 함께 언급된다. EU Policy Lab의 세션에서는 디자인, 미래예측, 행동통찰이 정책 형성의 도구로 결합된다. 인도네시아의 디지털정부 사례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시스템 개발에서 벗어나 사용자중심 운영모델로 전환한 경험이 소개된다. 이 흐름은 분명하다. 디자인은 공공서비스의 표면을 개선하는 기술에서 행정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서비스디자인과 정책디자인도 이 지점에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의 목소리가 행정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문제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를 해결할 권한, 예산, 협업, 평가체계를 함께 디자인해야 한다.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서비스가 계속 개선될 수 있는 조직의 학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은 행정이 더 친절해져야 한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행정이 더 상상력 있고, 더 실행력 있으며, 더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창의성은 장식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의 생존 역량이다.

결국 이 행사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좋은 정책은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좋은 행정도 좋은 의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자랄 조건, 사람을 잇는 관계,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서비스디자인과 정책디자인이 앞으로 다루어야 할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창의적 관료제란 특별한 공무원이 혼자 기적을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행정조직 안의 평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공공혁신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진짜 장치는 대개 그런 곳에 있다.

2026.6.19. 윤성원 + 챗GPT

출처

  1.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2026” — 행사 개요, 개최일, 장소, 주제 확인.
  2.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Online Programme” — 2026 프로그램 주제 트랙 확인.
  3.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Digital Kick-Off” — 2026년 3월 3~5일 온라인 프로그램 성격 확인.
  4.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All Voices, New Services: Creating Public Solutions With Service Design” — 서비스디자인 워크숍 확인.
  5.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Ein Blick in den Werkzeugkasten der modernen Gesetzgebung: Wie wir Service-Design und KI nutzen” — 서비스디자인·AI·입법 관련 세션 확인.
  6.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PolyFutures: Reimagining Policymaking Together” — EU Policy Lab, 디자인·미래예측·행동통찰 기반 정책형성 논의 확인.
  7.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Futures Served: A Collaborative Storytelling Game” — “collaborative policy design” 표현 확인.
  8.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Reintegrating Debtors – Why carrot trumps stick when tackling debt traps” — 리투아니아 채무자 사회복귀 사례 확인.
  9.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Building Lasting Digital Government that Outlives Administrations” — 인도네시아 INA Digital Edu 사례 확인.
  10.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Warum der Staat Projektmanagement braucht” — 공공부문 프로젝트 관리 논의 확인.
  11. tomo, “Thoughts on Conditions, Friends, and Maintenance from the Creative Bureaucracy Festival” — 참여자 후기, 조건·관계·지속성 해석 참고.